장벽의 시간

2021. 5. 26. 10:34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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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일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동시에 도전하는 과정 속에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는 일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도 수반한다.
이 시간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결계, 장막, 유리천장 등 다양한 단어로 표현을 할 수 있겠다.
어린시절 일본 애니메이션 '블리치'에 나온 '결계'의 이미지가 나에겐 강렬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은 귀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결계에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을 통과하지 못해 자신을 수련하고 '자격'을 확인 받기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는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주인공 해리포터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9와 3/4 승강장'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역시나 이 영화 주인공도 9와 3/4 승강장을 한번에 지나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다.
하지만 다시 시도한 끝에 승강장을 지나 호그와트로 향하게 된다.

고난을 겪고 또 한 걸음을 내딛은 이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끊임 없이 도전하는 자세. 그것 또한 맞다.
그런데 조금만 뒤에서 보면, 결계 또는 장막을 지날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의 동료가 없었다면, 그 벽을 통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지와 연대의 마음이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벽을 넘게해준 가장 큰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모든 결계, 장막, 유리천장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자격'의 문제가 떠오른다.
세상에는 불합리한 벽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장벽들은 허물어져야 한다.
장벽을 부수는 방법은 무엇일까.

누군가 먼저 그 장벽을 뛰어넘어 시스템을 부수는 방법,
그리고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벽을 부수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세상의 부정한 벽들이 무너졌다.

인류의 역사로 보면,
흑인해방운동이 그렇게 인종차별이라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벽이 깨졌고,
이데올로기를 넘어 자신의 가족이자 이웃을 만나기 위해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렸다.

다시 지금, 여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문제로 초점을 맞춰보면
하루하루 매일 숨막히는 일상을 억압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풀 수 있는 길은 연대이다.
진부한 결론이라고 비난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나는 그렇게 동료, 동지, 가족들의 힘으로 이 자리에 있다.
내가 그래서 잘났냐고? 위대하고 특별하지 않다.
사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수많은 청년 중 하나이고, 고액연봉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의 지지 속에 나는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동료, 동지들이 함께 걸어나갈 수 있길 희망하고, 함께하고 싶다.
동료, 동지들은 나의 지인들만이 아니다. 동료 시민으로 확장된다.

그러니, 우리 함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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